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나카지마 사토시 (문단 편집) === 오릭스 블루웨이브 === 아키타현립 타카노스 농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86년 드래프트 3위로 [[한큐 브레이브스]]에 입단했으며, 입단 2년차였던 1988년 10월 23일 한큐의 에이스 투수 [[야마다 히사시]]의 은퇴 경기이자 [[한큐 브레이브스]]의 이름을 걸고 치루는 마지막 경기(vs [[롯데 오리온즈]], [[한큐 니시노미야 구장]] 개최)에서 당시 감독이었던 [[우에다 토시하루]]의 추천 하에 야마다와 배터리로 호흡을 맞춰 [[한큐 브레이브스]] 최후의 포수로써 마지막 경기를 승리로 이끌었다. 팀명이 [[오릭스 브레이브스]]로 바뀐 1989년부터 강한 [[어깨]]를 앞세워[* 이미 고등학교 시절부터 강한 [[어깨]]로 유명했으며, 선수생활 후반기였던 2006년에도 [[한신 타이거스]]와의 [[교류전]]에서 개최된 스피드건 콘테스트에서 '''구속 146km/h'''를 찍었을 정도였다.] 기존 레귤러였던 후지타 히로마사를 제치고 주전 포수로 자리잡아 그 해 121시합에 출장하여 [[골든글러브(일본프로야구)|골든글러브]]를 수상했고, 다음 해인 1990-91시즌엔 2년 연속으로 두 자릿 수 홈런을 기록했다. 이후엔 타격 부진 등으로 레귤러에서 밀려나 타카다 마코토[* 동명의 [[혐한]]과는 상관 없는 인물로, 나카지마와 같은 해에 [[요미우리 자이언츠|요미우리]]의 드래프트 3위 지명을 받았으나 [[무라타 신이치]] 등에게 밀려 1992년 오릭스로 트레이드되었다. 이후 나카지마 등과 주전 경쟁을 벌이면서 1996년에 오릭스의 2연패를 이끈 공로로 포수 [[골든글러브(일본프로야구)|골든글러브]]를 수상했으며 은퇴 후엔 데뷔팀 요미우리에서 장기간 코치직을 역임했다.], 미와 타카시와 출장기회를 나눠가며 주전경쟁을 벌이기도 했으나 1995-96시즌에 다시금 주전포수로써 [[오릭스 블루웨이브]]의 [[퍼시픽리그]] 2연패에 공헌하면서 [[베스트나인]]을 1차례(1995[* 같은 해 [[사토 요시노리]]와 [[배터리]]를 짜 역대 최초 40대 투수 [[노히트 노런]](8월 26일 vs [[킨테츠 버팔로즈]], [[후지이데라 구장]] 개최)을 이끌기도 했다. 그리고 사토 요시노리의 고향팀인 니혼햄에서 재회해 다르빗슈의 포텐만개에 함께 기여한적 있다. 그리고 10년만에 또다시 우승반지를 득템했다.]) 수상하기도 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